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 용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강연회에서 강사가 청중들에게 ‘여러분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분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연세가 지긋이 드신 할아버지 한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마음에 미워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있나요?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오래 살다보니 미운 놈들이 다 죽었어’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며 산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용서하며 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무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십니다. 한 번도 힘든데, 두 번 세 번도 힘든데 우리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신 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용서를 잘 하지 못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용서의 삶을 살라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용서가 <마음의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을 때 누가 더 힘이 들던가요?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입니다. 마음의 평강과 기쁨, 행복을 빼앗아 가고, 어둡고 캄캄한 우울의 방으로 나를 가두어 버립니다. 영적 신앙도 무너뜨립니다. 찬양과 기도가 막힙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 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라고 했습니다. 등에 박힌 총알은 몸만 아프게 하지만, 마음에 품은 복수심은 그의 마음과 영혼과 삶 까지 다 파괴시킵니다. “복수를 꾀하는 자는 무덤을 두 개 파야 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복수의 대상만이 아니라 본인까지 파괴시켜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용서의 꽃>의 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용서하지 않은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든 날이 있습니다.
무어라고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나의 부끄러움을 대신해
오늘은 당신께 고운 꽃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토록 모진 말로 나를 아프게 한 당신을 미워하는 동안
내 마음의 잿빛 하늘엔 평화의 구름 한 점 뜨지 않아 몹시 괴로웠습니다.
이젠 당신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참 이기적이지요?

용서하지 못할 때 내 마음은 잿빛 하늘과 같이 평화의 구름 한 점 뜨지 않아 괴로웠기에, 이제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용서하겠다는 고백이 너무나 마음에 다가옵니다. 용서함으로 더 이상 미움과 고통의 사슬이 나를 묶어 끌고 다니지 못하게 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둡고 캄캄한 방의 문을 열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그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복음23:34)

첫째 <먼저의 용서>입니다. 사람들에게 용서의 조건은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와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용서를 빌지 않습니다. 용서를 빌지 않으니 용서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서를 빌기 전 먼저 용서를 하셨습니다. 데이비드 옥스버거는 용서의 “forgiveness”가 “주다”라는 “give”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내게 아픔과 상처를 준 사람에게 갚을 권리를 포기하고 베푸는 것이 용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셨습니다. 몇 시간 후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 칠 발들이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할 베드로의 발이요, 은 30에 팔 가룟 유다의 배반의 발도 있었습니다. 용서를 빌기도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사 먼저의 용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며 먼저 용서를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인간 이해의 용서>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무지함을 이해함으로 용서하셨습니다. 못박는 자들을 위해 마치 변호인처럼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내적치유 수련회를 마칠 때면 참가자들이 고백했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 상처가 제일 큰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아픈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만 생각했는데, 나 역시 많은 상처를 주었겠구나”라는 깨달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용서함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은 내게 아픔을 준 그 사람도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겠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가해자인 그 사람이 다른 누군가로부터는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마음에 쓴 뿌리가 되어, 독소를 품어 내고 가시 돋힌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많은 아픔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뭔가 해결되지 않은 아픔과 상처가 있나 보다 이해함으로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기도를 통한 용서>입니다. 필립 얀시는 “용서는 향수병에서 뿜어낸 향수처럼 세상에 뿌려지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이나 용서는 아프도록 고통스러운 것이다” 했습니다. 용서 자체는 향수병에서 뿜어진 아름다운 향기와 같습니다. 용서는 기쁨과 행복, 말할 수 없는 마음에 평강을 줍니다. 그러나 용서하기까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과거 아픈 상처가 온 마음을 휘 저어 놓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말합니다.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마나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하고 용서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먼저의 용서, 인간 이해의 용서, 기도를 통한 용서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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