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의 “파게”와 “테에나”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마가복음 11장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다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았으나 없자 저주하여 뿌리채 말라 죽게 하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합리적인 분이요, 선하신 분이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나무에 열매가 맺혀있지 않다고 저주를 하십니다. 그것도 막11:13에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이 무화과나무 사건을 통해 ‘기독교의 예수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면 어찌 열매의 때도 안되었는데 열매를 찾고 열매가 없다고 저주할 수 있는가? 기독교 신앙이 온전히 신뢰받을 만한 ‘선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공격을 하였습니다.

인본주의자였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에서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인간 예수가 임박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벌인 결정적인 사건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너무 배가 너무 고프셨는데 찾아도 없어 화가 나셔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십자가 죽음 앞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성을 잃어서였을까요?

이는 무화과나무의 특성과 히브리어 단어를 잘 알지 못한데서 온 오해였습니다.

무화과열매는 보통 5번 열립니다. 긴 겨울을 지나 3,4월이 되면 첫 열매가 맺힌 후 10월까지 네 차례 더 열립니다. 3,4월에 열리는 첫 열매를 “파게”라고 합니다. 파게의 열매는 볼품도 없고 작고 맛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와 순례자들에게 매우 귀한 열매였습니다. 그리고 이 파게를 따 줘야만 10월까지 네 번에 걸쳐 열매도 크고 맛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때 네 번에 걸쳐 열리는열매를 “테에나”라고 합니다.

마가복음11장13절을 이해하기 쉽게 쓰면 이러합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파게)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테에나)의 때가 아님이라”(막11:13)

즉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셔서 찾으셨던 무화과 열매는 ‘크고 맛 있는 테에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 “파게”의 첫 열매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파게가 열리지 않았다고 굳이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실 필요까지 있으셨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면서까지 주시고자 하는 교훈과 메시지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위선과 형식으로만 가득한 열매 없는 신앙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함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서 크고 맛있는 테에나의 완성된 열매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맛도 없고 볼품도 없고 작은 파게의 열매를 찾음에도 그 파게조차 열리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와 찬양, 교회와 삶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과 봉사에 있어서 작은 파게의 열매라도 맺혀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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