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교인>과 <계군 교인>

한국 기독교의 초창기 역사를 보면 흥미롭고 재미있는 여러 일들이 있었음을 봅니다.

이덕주 교수가 쓴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에 ‘쌀 교인’과 ‘계군 교인’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들어왔던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중반은 이루말할 수 없이 가난하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 ‘교회에 가면 먹을 것을 준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선교사들은 이러한 교인을 가리켜 ‘Rice Christian’ 곧 ‘쌀 교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런가하면 ‘계군 교인’도 있었습니다. 미 감리회에서 1892년 존스 선교사를 인천 복음화를 위해 파송하였으나 복음전파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를 돕던 이명숙씨가 ‘계를 만들자’ 제안을 하였습니다. 계 모임을 만들자 50여명이 왔습니다. 곗날은 주일이었고, 계를 하는 곳은 예배당이 된 것입니다. 이들을 ‘계군 교인’이라 불렀는데 계군 한 명이 돈을 챙겨 도망감으로 계모임은 깨지고 사람들도 떠나고 교회의 평판만 나빠졌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에 가면 먹을 것과 시상품으로 학용품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 시절 군종사병을 했습니다. 매주일 초코파이나 먹을 것을 준비하여 예배에 나오는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었습니다. 매 주일 ‘종교행사’라하여 성당, 예배당, 불당에 갈 사병들을 모아서 갔는데, 어느 곳에서 먹을 것을 더 주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지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꼭 나쁘게만 볼 수 없는 것이, 목적이 나의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계 때문에 모였던 사람들이 곗돈을 가지고 도망감으로 교회를 다 떠났습니다. 그런데 떠난 사람들 중에 어느 주일 두 사람이 교회에 왔습니다. 계 때문에 교회에 왔었으나 그 동안 들은 말씀이 좋아서 왔다며 계속 나와도 되느냐 물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계를 위해 왔으나 말씀의 씨앗이 그들의 심령에 떨어져 믿음의 싹을 냈던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인천에서 얻은 첫번째 구도자들로 ‘인천 내리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접촉점( a point of contact)’을 만들라고 합니다. 불신자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 관심사를 통해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선교 초창기에 쌀과 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가난한 시절 먹을 것과 경제적인 측면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힘을 썼던 교육과 의료 또한 접촉점이었습니다.

한인 이민교회 초기에 목회자들이 공항에 나가 이민자들을 맞이하며 집과 일자리를 알아주었습니다.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며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복음의 접촉점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만남, 식사, 교제, 운동, 한국학교 등 서로를 연결해 줄 수 있는 관계의 고리가 접촉점이 될 것입니다.

접촉점은 무엇보다도 영혼사랑과 관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한 영혼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넘쳐나길 소망하며, 쌀 교인이든 계군 교인이든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으면 좋겠습니다. 구원하실 이도 하나님,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실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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