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백

<마음의 여백>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줄 모르는 사람은

도종환 시인의 “여백”이라는 시입니다. 시인은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빽빽히 들어선 나무들 때문이 아니라 여백 때문임을 노래합니다. 넉넉한 허공, 빈 하늘이 나무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여백이 있기에 풍경도 사람도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책을 출판하는 분으로부터 예전에는 내용만 좋으면 글로만 가득 채워져 있어도 독자층이 있었으나, 지금은 여백과 함께 적적할 삽화를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카톡도 빽빽한 글보다 여백과 함께 적절한 이모티콘이 있을 때 잘 읽게 됩니다.

스코틀랜드 속담에 “현명함은 열 가지로 만들어 진다. 그중 아홉 가지는 침묵이다. 나머지 한 가지는 간결한 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 가지 중 아홉을 침묵했으니 남은 하나로 많은 말을 해야 할텐데 그것 마저 간결한 말이 지혜요 현명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림에도 여백의 미가 있습니다. 평안과 마음의 여유를 줍니다. 안식을 줍니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합니다. 그러기에 여백은 누군가에 넓은 초원이 되기도 하고, 푸른 하늘을 나는 새가 되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도 여백있는 사람이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흠이 없는 사람은 탁월함에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백을 가진 사람은 누군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기쁨과 슬픔, 용서와 사랑, 관용과 포용, 배려와 긍휼이 머물게 됩니다.

콜레스테롤에 의해 좁혀진 혈관처럼 마음의 여백이 좁혀져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린도후서6:13)는 권면처럼 마음이 넓혀지길 기도하게 됩니다. 넓혀진 마음, 그 마음의 여백은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텅 빈 마음으로 오사 모두를 품으셨던 예수님처럼 텅 비고 넓혀진 마음의 여백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십이월 성탄의 계절이 되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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