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랍비가 죽어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저는 민족의 해방자 모세처럼 살지도 못했고, 예언자 엘리야처럼 살지도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는 모세처럼 살지 못하고 엘리야처럼 살지 못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너 자신을 살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삶처럼 살았느냐 살지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최선을 다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짜장면은 짬뽕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짜장을 시켜놓고 옆 사람의 짬뽕을 부러워하는 순간 제일 맛이 없는 짜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에 수 많은 종류의 새들,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어류들, 땅에 각양 동물들과 각종 꽃과 식물들, 저마다의 모양과 색깔과 향기와 소리를 갖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2)
각기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독특성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만족하셨던 것입니다.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든 사람은 더 더욱 그러합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품은 하나님을 닮게 하되, 외모와 키, 삶의 방식과 생각, 개성과 취미는 다양하게 주셨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과 각자의 삶을 살며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인종이나 직업, 학위나 외모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하여 우월하거나 열등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동등히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기쁨과 행복을 빼앗기고 아픔과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갈까요? ‘무엇이 당신에게 상처가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130명중 77명이 비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말, 죄책감, 무시, 거절 다음으로 많은 수였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 양심을 찌르는 죄책감, 무시와 거절감과 함께 비교 또한 무시 못할 아픔의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행복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 너는 너’의 삶을 사는 것에 있음을 봅니다.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를 말함이 아닙니다. 나는 나 됨을 사랑하며, 너의 너 됨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도토리 키재기하듯 조그마한 차이에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할 때 행복이 주어지는 것 입니다.
각자의 모습 속에서, 각자의 장점으로 서로 어우러질 때 아름답고 멋진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비 온 뒤 개인 하늘을 수놓는 무지개도 각자 자신의 색을 밝히며 일곱 색깔이 함께 어우러져 있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황이 빨강을 부러워하여 빨강이 되고, 노랑이 초록이 부러워 초록이 된다면 일곱 색깔 무지개의 아름다움은 퇴색되고 말 것입니다.
비교하는 순간 행복은 저 멀리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잔잔한 호수와 같던 마음의 평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거칠고 사납게 요동치는 바다가 될 것입니다. ‘나의 나됨’을 사랑하고, ‘너의 너 됨’을 존중하는 ‘우리’가 되어 서로 사랑함으로써 개인과 가정, 교회와 일터에 기쁨과 행복 가득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