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집 교회 (간증3)

<나의 간증스토리3>

매일 밤 40여일의 기도를 마친 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결국 순종하여 목회자가 되기로 헌신하였다. 이후 저녁 기도에서 새벽기도로 옮겼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17살 때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아가면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에 수를 놓듯 펼쳐진 새벽별과 밤하늘을 은은히 비추는 달이 반가이 맞이하여 줬다.

대문을 열고 마을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새벽의 적막을 깨우는 개들의 짖음이 온 동네를 떠들어 댔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개들의 짖는 소리도 멎었다. 귀가 예민한 개들이 처음에 낯설게 들렸던 걸음걸이가 그저 집 앞을 지나가는 걸음임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한참 잠에 취해 있어야 할 열 일곱 소년이 눈을 비비며 기도하러 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였을까?

교회는 집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을길과 냇가를 따라 교회에 들어서면 키가 큰 남자 한분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계셨다. 낙타 무릎이 되도록 평생 기도의 삶을 사셨던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가장 먼저 교회에 도착하여 50여명의 새벽 기도 용사들이 앉을 방석을 펼쳐 놓으시며 그 자리에 앉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매일 2-3시간의 기도와 함께 700여명의 중보기도를 하셨던 분이다. 나는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잔잔한 목소리로 기도하시는 아버지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나의 기도를 얹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는 평신도였으나 나의 목회와 영적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나의 영적 멘토요 본이 되신 분이다.

그런데 누구나 경험한 바이겠지만 처음의 열정과 헌신이 지속적으로 간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나 역시 불같은 뜨거운 마음과 열정으로 나갔던 새벽기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고등학생이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깜깜한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 평생 이렇게 해야 해요’라며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곤 하였다.

어느 날 문득 묘안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어려우니 차라리 교회에서 잠을 자면 저절로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에 고3이 되면서 잠을 교회에서 자기 시작했다. 그때 1 년여를 교회에서 잠을 잤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교회에서 잠을 자는 것이 나에겐 마치 집에서 잠을 자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하다. 교회가 내게 진짜 아버지의 집이 된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제목이 있거나 뭔가 바쁜 일이 있으면 종종 교회에서 잠을 자곤 한다. 이곳 세빛에서도 벌써 여러 날을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평안한 밤을 보냈다.
나에게 주어진 독특한 하나님의 은혜다.

2019년 11월 1일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김귀안)

Leave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