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삼일절을 앞두고 이육사의 <꽃>을 찾아 읽습니다. 본명은 이활(李活)이며 개명하기 전의 이름은 이원록/이원삼이었던 그는, 대구형무소 수감생활 중 수감번호인 264를 따서 아호를 육사(陸史)로 했다고 하지요. 민족의 해방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받은 박해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여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육사가 감옥에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는, 마치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뻐하라고 외쳤듯이, 희망을 노래합니다.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절망의 땅에서도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얼어붙은 시베리아의 새벽 깊은 눈속에서도 꽃씨는 피어날 준비를 하고, 저 멀리 제비떼는 까맣게 봄 소식 안고 날아온다는 계절의 약속을, 그는 미련하리만치 낙관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11:38). 황무지 속에서 장미꽃을 보는 사람을, 얼음 속에서 불꽃처럼 숨쉬는 꽃 봉우리를 보는 이들을, 세상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시절이 하수상합니다. 곳곳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 쉽게 내뱉는 희망은 공허하지만, 짙은 어둠을 뚫고 비치는 한 줄기 빛은 세상을 이깁니다. 사막 한 복판에서도 꽃을 보는 믿음,오늘날 이보다 절실한 기도가 또 있을까요?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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