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이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고 시퍼렇게, 아니 새하얗게.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건만 눈은 버젓이 살아 있습니다. 어쩌면 떨어졌기에 살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 눈에 대고 기침을 하자고, 가래를 뱉자고 시인은 말합니다. 순백의 눈 위에 가래 침을 뱉자는 심보는 뭘까 싶지만, 그 또한 살아 있음에 대한 선언일 터. 오로지 상승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수없이 추락을 경험했을 ‘젊은 시인’에게 김수영은 마음 놓고 기침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세상 질서에 순응하느라 고여있던 가슴 속 언어를 마음껏 내뱉어, 너의 살아 있음을 증명해내라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기침도 제대로 못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직 순응과 복종을 요구 당하며 입 막고 귀 막고 살아야 했던 시절. 그 속에서도 길들여지지 않고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던 젊은 시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아침을 맞습니다. 성추행을 당하고 8년이나 침묵해야 했던 한 검사는 이제서야 기침을 하고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가 뱉어 냅니다. 그녀의 살아 있음에, 수 많은 피해자들의 여전한 살아 있음에 아픈 고마움의 인사를 건넵니다. 침 좀 뱉으셨던 갈릴리 예수의 이름으로.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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