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주름

– 박노해

많은 강을 건너고

많은 산을 넘다 보니 알지요

이유 없는 산등성이 하나

연유 없는 골짜기 하나 없지요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고

그냥 불어가는 바람은 없지요

얼굴은 얼의 골

내가 걸어온 사연의 행로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졌으니

주름 편다고 지워지지 않아요

주름진다고 낡아지지 않지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발자국에

부디 짓눌려 구겨지지 말기를

얼의 골짜기로 무늬 지어가기를

골짜기 물 맑고 깊으니

산 또한 푸르고 힘차니

주름 펴지 말고

아름답게 새겨가기를

 

2017년이 겨우 2주 남았어요. 올해도 많은 산과 강을 넘으며 여기까지 왔네요. 그간 만난 산등성이와 골짜기들이 다 인생의 사연이 되었겠지요.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 사연 덩어리들이에요. 그 눈빛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고 그 웃음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지요. 얼굴은 참말로 ‘얼의 골’이니까요.

한 해 동안 뭐했나 싶지만, 확실한 건 주름이 늘었다는 것. 그게 아니면, 주름이 깊어졌다는 것. 당연한 일 아닌가요? “내가 걸어온 사연의 행로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졌으니”. 일기장에 못 쓴 거 얼굴에라도 썼으니 다행이에요. 그러니 한숨 쉬지 말기로 해요. 주름 편다고 지워지는 사연이 아니고, 주름진다고 낡아지는 인생 아니니까.

예수님 얼굴에는 주름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사연이 많은 분이니 골짜기도 깊었겠지요. 깊은 골짜기일수록 물이 맑은 법, 그분의 얼이 맑은 연유를 알겠네요. 그러니 우리, “주름 펴지 말고 아름답게 새겨”가도록 해요. 올해도, 내년에도.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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