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처음처럼

– 안도현

이사를 가려고 아버지가

벽에 걸린 액자를 떼어냈다

바로 그 자리에

빛이 바래지 않은 벽지가

새것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집에 이사 와서

벽지를 처음 바를 때

그 마음

그 첫 마음,

떠나더라도 잊지 말라고

액자 크기만큼 하얗게

남아 있다

 

이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시인의 눈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액자를 떼어낸 후, 빛이 바래지 않은 벽지가 새것 그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액자 크기의 하얀 그 자리를 제외하면, 온통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빛 바랜 벽지는 때묻은 내 마음이고, 익숙해진 안락함이고,어느새 잃어버린 감사입니다.

그래도, 잘 보이는 벽 한 가운데 첫 마음이 걸려 있습니다. 이사 첫 날 벽지 바를 때, 그 첫 마음 잊지 말라고 ‘하얗게’ 남아 있습니다. 다 풀지 못한 이삿짐 곁에 두고 손 모아 기도하던 그 마음 잊지 말라고, 쉽사리 잠들지 못하던 첫 날 밤의 감사를 기억해 달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액자 크기만큼’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 몇 가정이 이사를 했습니다. 다 표현 못하는 감사와 간구가 제 안에도 넘칩니다. 이삿짐 하나하나가 사연 덩어리입니다. ‘새 집 주소에요’라는 한 마디에 새 은혜가 흐릅니다. 이 땅에 잠시 이사 오셨던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2)”하시며 약속하신 ‘내 아버지 집’을 소망합니다. 매일,이사 준비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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