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늘

아버지의 그늘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 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신경림,<아버지의 그늘>중에서

모두의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이 시인의 아버지처럼 “툭하면 오밤중에 취해서 널부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오던, 징글맞은 아버지도 있습니다. 평생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아들 딸들이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산 시인, 그가 어느 날 거울에서 만난 것은 다름아닌 아버지였습니다. 그 지겨운 아버지가 내 안에 있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아버지의 어색한 화해를 합니다.

Father’s Day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떠올려야 하는 날, 눈물이 날까 봐 꾹 참고 있던 기억을 소환해야 하는 날입니다. 어쩌면 화해가 필요한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 끝까지 믿어주시는, 그러나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던 하늘 아버지와의 화해도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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